癸未七月日, 因內醫院關, 申飭貢蔘各邑關文 | 계미년(1823)1 7월 모일, 내의원의 관문으로 인하여 인삼을 공납하는 여러 고을을 신칙하기 위해 내린 관문
關是置有亦2. 御供事體, 何莫非審愼, 而至於本道貢蔘段3, 乃是大殿進御湯劑之需, 則尤何等重大, 而挽近蔘弊, 轉益膠固, 封進列邑少不惕念, 本官則專委於醫生. 醫生則一付之蔘商, 而所謂蔘商, 都是逐利無賴之類也. 罔念御供之所重, 徒售肥己之奸計, 幻假粧眞, 演小成大, 體樣只取眩眼, 性味不啻相背. 故雖或捱過於營門看品之時, 每致生頉於藥院入用之際, 揆以道理義分, 寧不滿滿悚懍也哉!
관문4입니다. 어공(임금에게 물건을 바침)의 사체(事體)는 무엇인들 살피고 삼가지 않겠습니까마는 본도에서 공납하는 인삼의 경우에는 바로 대전(임금)께서 드실 탕제에 쓰이니 그 얼마나 더 중대합니까. 그런데도 근래 인삼의 폐해가 갈수록 더욱 굳어져서 봉진하는 고을들이 조금도 척념5하지 않아 본관(고을 관아)은 의생에게 전부 위임해버리고 의생은 인삼 상인에게 일체 맡겨버렸는데, 이른바 인삼 상인이란 자들은 모두 이익만을 쫓는 무뢰한 무리입니다. 어공의 막중함은 생각하지 않고 한갓 자기만 살찌우는 간사한 계책을 부려 거짓을 바꾸고 진실을 꾸미고, 작은 것을 부풀려서 큰 것을 만들어 눈을 현란하게 하는 모양만 취하여 약성이 어긋날 뿐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비록 혹 영문에서 간품할 때 넘어가기도 하지만 매번 내의원에서 들여 사용할 즈음에 탈이 생기게 되니, 도리와 사정으로 헤아려볼 때 어찌 참으로 몹시 두렵고 떨리지 않겠습니까!
苟究弊源, 蔘商何論. 若自本邑先期廣貿, 如不合用, 退而更求, 期得眞品而後, 始乃封進, 則蔘商輩作奸之弊, 何從而生乎! 不此之爲, 沁泄看過, 一委醫生之後, 蔘品眞贗, 少少無察飭, 拋閣一邊, 任他作俑. 於是乎醫生則幸其彌縫, 蔘商則利其取剩, 容僞售奸, 愈往愈甚. 究其所爲, 固是萬戮猶輕, 而馴致此弊, 漸至難醫者, 獨豈非列邑不察之所使然乎.
진실로 폐해의 원인을 궁구한다면 인삼 상인을 어찌 논하겠습니까. 본읍에서 기한보다 앞서 널리 매매하되 만일 쓰기에 적합하지 않으면 내쳐버리고 다시 구하여 기필코 진품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봉진한다면, 인삼 상인들이 간악한 짓을 하는 폐단이 어디로부터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지는 않고 흐리멍텅하게 보아넘기면서 의생에게 일체 맡겨버린 뒤에 인삼의 품질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조금도 살펴 신칙함이 없이 한 번 포기해 버린 채 그들에게 나쁜 선례를 만들도록 내버려 둡니다. 이에 의생은 요행으로 미봉책을 쓰고 인삼 상인은 부당 이득을 얻는 데 빠져 거짓을 용인하고 간계를 부림이 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그 하는 짓들을 따져보면 진실로 만 번을 죽여도 오히려 가볍습니다만, 이러한 폐단을 점차 조성하여 점점 고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유독 어찌 고을들이 잘 살피지 못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겠습니까.
營門業欲矯革, 而京關際此申嚴, 爲今之道, 唯有還復舊規, 自各該邑, 求貿封進, 則庶可爲一分捄弊之方是矣6, 姑以令申之義, 先此措辭發關爲去乎7, 自今秋等爲始, 貢蔘各邑, 勿復專委於無知一醫生, 起送首吏, 鄕中一人眼同醫生, 前期求貿, 勿論體樣之獨頭兩枝8ㆍ長短大小, 必得眞箇山蔘, 然後始乃看品於營門是矣. 如是另飭之後, 若或視同循例, 復襲前謬, 萬有一容奸狹雜之弊, 現發於看品之際, 則該邑醫生之直地嚴刑遠配, 已無可論, 而不飭之本官, 斷當狀聞論勘, 除尋常, 預各惕勵, 毋致後悔爲旀9, 雖以蔘價言之, 看品之後, 每多有蔘商輩未收甭寃之弊. 莫重貢蔘之不給價封進, 寧有如許事體乎! 況自今蔘料旣已前期貿取, 則價本亦當隨卽備給. 若於看品之時, 雖零些之數, 有所未收之是如10, 及聞於營門, 則該醫生之限死嚴治, 斷不饒貸, 而責亦有所歸. 並須知悉後, 九月初十日看品次, 初九日及良11, 各邑首吏, 鄕中一人, 實醫生眼同待令爲旀, 擧行形止, 亦卽馳報, 宜當向事12.
영문에서 이미 바로잡으려 하고 경관(도성의 관청)에서 이러한 때 거듭 엄중히 단속할 것인데, 지금 할 수 있는 방도를 들자면 오직 예전 법규를 복구하여 각 해당 고을에서 구무(求貿)하여 봉진하는 일만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거의 조금이나마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로되, 우선 법령을 펴는 뜻으로 먼저 이렇게 문장을 써서 관문을 보내오니, 이번 가을 분기부터 시작하여 인삼을 공납하는 각 읍은 다시는 무지한 일개 의생에게 전담시키지 말고, 으뜸 아전을 보내어 고을의 한 사람이 의생과 안동(眼同)13하여 기한보다 앞서 구무(求貿)하되, 외톨 노두와 두 곁뿌리의 장단과 대소의 모양은 따지지 말고 반드시 진짜 산삼을 얻은 뒤에야, 비로소 영문에서 간품하게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따로 신칙한 뒤에 만약 혹여 예전과 똑같이 보고 관례를 따르며 다시 이전의 착오를 인습하여 만에 하나라도 간계를 용인하고 협잡질을 하는 폐단이 간품할 때 적발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해당 고을의 의생을 곧바로 엄중히 형벌하고 멀리 유배보내는 것은 이미 논할 것도 없거니와 신칙하지 않은 본관은 단호히 장계로 보고하여 논하여 감처(勘處)하되 예사로이 하지 말고 미리 각기 두렵게 여겨서 후회를 부르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인삼 값을 놓고 말하더라도 간품한 뒤에 매양 인삼 상인들이 값을 받지 못해 원통함을 호소하는 폐단이 많습니다. 더없이 중한 공삼(貢蔘)을 값도 주지 않고 봉진하니 어찌 이러한 사체가 있단 말입니까. 더구나 이제부터 삼료(蔘料)는 이미 미리 사서 확보하도록 하였으니 값은 본래 역시 곧바로 갖추어 주어야 합니다. 만약 간품할 때 비록 적은 수량이라도 값을 받지 못한 일이 있다고 영문에 들리게 된다면 해당 의생을 죽을 정도로 엄히 다스려야지 단연코 너그럽게 용서해 주어서는 안되거니와 책임 역시 귀착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모두 반드시 잘 알게 한 뒤 9월 10일에 간품하기 위해 9일에 미쳐 각 고을의 으뜸아전, 고을 사람 하나가 실제로 의생과 안동(眼同)하여 대령하며 거행한 전말도 역시 곧바로 급히 보고해야 할 일입니다.
附內醫院關, 爲相考事. 御供事體, 何等嚴重, 而近日蔘弊, 去而益甚, 前後關飭, 徒皈空言, 未見實效. 容僞售奸, 愈出愈竒, 山家之附贅, 蘆頭之冠長, 細尾之纒絡, 惟務取重, 專事巧幻. 雖在常時, 猶萬萬駭悚, 況於近來, 湯劑日進, 蔘用居多, 揆以分義道理, 寧不凜然而寒心哉. 究其爲弊之本, 專由於蔘商輩之逐利奸僞, 往來京鄕, 以前年占退之物, 作今歲封進之需, 亂加膠糊, 苟免目前之患. 而且多蛀損色敗, 可愕可驚之端, 不一而足. 渠輩亦人耳, 若有一分彜性, 念及所重, 焉敢如是除良14. 究厥所爲, 雖萬加誅戮, 何能贖其一半分乎.
내의원 관문에 덧붙여 상고(相考)할 일입니다. 어공의 사체가 그 얼마나 엄중하단 말입니까. 그런데도 근래 인삼의 폐단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니, 그동안 관문으로 신칙한 것이 한갓 빈말이 되어버리고 실효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거짓을 용인하고 간계를 부림이 갈수록 더 기이해져서 산촌에서 혹을 붙이고 노두에 관(冠)을 씌우고15 가는 뿌리를 얽고 이어서 오직 무겁게 하는 데만 힘쓰고 오로지 교묘하게 현혹시키는 것에만 전념합니다. 이는 비록 평상시라도 오히려 몹시 놀랍고 두려운 일인데, 더구나 근래 탕제를 날마다 올림에 인삼을 쓰는 경우가 많으니, 사정과 도리로 헤아려볼 때 어찌 등골이 서늘하면서 한심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 폐단의 근본을 궁구하자면 인삼 상인들이 이익을 쫓아 간계와 거짓을 일삼아 한양과 지방을 왕래하면서 지난해 점퇴(點退)당한 물품을 가지고 올해 봉진할 물건으로 만들면서 이리저리 아교풀질을 해서 눈앞의 문제를 벗어나려고 한 데서 전적으로 연유합니다. 그리고 좀으로 손상되고16 색이 변하는 경우가 많아 경악스럽고 놀랄 만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사람일 뿐이니 만약 조금이나마 떳떳한 본성이 있어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에 생각이 미친다면 어찌 감히 이와 같이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행위를 깊이 헤아려 보면, 비록 만 번 처형을 하더라도 어찌 능히 그 반푼이나마 속죄할 수 있겠습니까.
大抵長短大小, 一依本體, 專爲務實, 則右項奸弊, 無自而生. 今此費辭張皇, 非同循例申飭, 必欲痛革前謬而乃已. 須悉此意, 斷自今秋, 所貢蔘椏, 無論獨頭兩枝ㆍ長短大小, 一從本體, 無敢復蹈前習之意, 嚴明申飭於封進列邑等處是矣. 如是除尋常, 刻意布論之後, 若或視以例飭, 依前伎倆, 則該邑守令之論勘, 斷不饒貸哛除良, 其責當有所歸17, 惕念奉行之地, 宜當向事.
대저 길이와 크기는 한결같이 산삼의 몸체에 의거하여 오직 실질에 힘쓴다면 위에서 말한 간사한 폐단은 생겨날 곳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은 것은 관례에 따라 신칙한 것과는 같지 아니하니, 반드시 이전의 잘못을 통렬하게 고치려고 한 뒤에야 끝날 것입니다. 반드시 이러한 뜻을 잘 알아 이번 가을부터 시작하여 공납하는 인삼은 외톨 노두와 두 곁뿌리의 장단과 대소는 따지지 말고 한결같이 산삼의 몸체를 기준으로 하고 감히 이전의 관습을 다시 따르지 말라는 뜻으로 봉진하는 여러 고을들에 엄명하게 신칙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사로이 하지 말고 애를 써서 논의사항을 알린 뒤에 만일 혹여라도 이를 의례적인 신칙으로만 보고 예전처럼 꼼수를 부린다면 해당 고을 수령을 논하여 감처(勘處)하는 문제는 결단코 너그럽게 용서하지 못할뿐더러 그 책임을 마땅히 귀착할 것이니, 두렵고 삼가면서 받들어 거행함이 마땅한 일입니다.
藥院提調金尙書蓍根.
내의원제조 상서(尙書) 김시근(金蓍根)18.
丙寅二月, 仍傳敎減一斤, 癸酉十二月二十四日, 領相李裕元, 筵稟復舊.
병인년(1866, 고종 3) 2월 전교로 인하여 1근을 줄였다가19, 계유년(1873) 12월 24일 영의정 이유원20이 경연에서 아뢰어서 복구했다.21 22
내용 말미의 내의원 제조 김시근(金蓍根)의 기록을 통해 계미년이 순조 23년(1823)으로 확정할 수 있다. ↩︎
是置有亦:이두로서 ‘~이라고 하다, ~이기도 하다’란 뜻이다. ↩︎
段:이두로 주제격 조사 ‘은/는’의 뜻이다. ↩︎
관문:관문이란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청으로 보내는 공문서 양식이다. ↩︎
척념:경계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
是矣:이두로 ‘이되’의 뜻이다. ↩︎
爲去乎:이두로 ‘~하오니’의 뜻이다. ↩︎
枝:원문은 ‘妓’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근거하여 ‘枝’로 수정하였다. ↩︎
爲旀:이두로서 ‘하며’의 뜻이다. ↩︎
是如:이두로서 ‘~이다’의 뜻이다. ↩︎
及良:이두로서 ‘~에 미쳐서’의 뜻이다. ↩︎
向事:이두로서 ‘~할 일’의 뜻이다. ↩︎
안동(眼同):함께 참여하여 보게 한다는 뜻이다. ↩︎
除良:이두로서 ‘더러’의 뜻이다. ↩︎
혹을 붙이고 노두에 관(冠)을 씌우고:인삼의 노두는 연령을 알려주는 지표이므로, 본래의 연령보다 꾸며서 더 오래된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
좀으로 손상되고:좀이 아교풀을 좋아하므로 더욱 좀 먹게 된다. ↩︎
歸:원본에는 ‘敀’으로 되어있으나 통용자인 ‘歸’로 수정했다. 이후로도 동일하다. ↩︎
상서(尙書) 김시근(金蓍根):김시근(1755-?)은 본관이 안동(安東), 자는 흥지(興之)로 재순(在淳)의 계자이다. 1802년 성상수두평복경과(聖上水痘平復慶科)에 급제, 순조(純祖) 조에 이조판서를 지냈다. 신안동김씨 23세이다. ↩︎
《승정원일기》 고종 3년(1866) 2월 26일 기사에 나온다. 봄과 가을 분기에 반근씩, 합계 1근을 줄였다. ↩︎
이유원:이유원(1814-1888)은 본관이 경주(慶州), 자는 경춘(京春)으로 이조판서 계조(啓朝)의 독자이다. 헌종 7년(1841)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고종 조에 영의정을 지냈다. 1871년 완성한 잡록집인 《임하필기》는 내의원제조로서 겪은 일도 실려 있어서 의학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백사공파 33세이다. ↩︎
《승정원일기》 고종 10년(1873) 12월 24일 기사에 나온다. ↩︎
이 내용으로 인해 문헌의 작성 시기에 대해 이견이 있다. 이는 문헌이 제책된 뒤에 후대에 가필된 부분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