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田 | 약전1
藥田峴 英宗朝己巳打量, 一結八十九負七束內, 家垈六十五負二束除, 時起一結二十四負五束,
약전고개2 영조 조 기사년(1749) 측량한 1결3 89부 7속 가운데 가대(집과 그에 딸린 토지) 65부 2속을 빼면 시기전(時起田)4은 1결 24부 5속이다.5,
栗島 己巳打量, 十結八束內, 乙酉打量, 舊浦落四結四十九負一束, 今浦落覆沙二結六十四負三束, 加耕浦落三負七束, 家垈一結八十負六束除, 時起一結六負八束,
밤섬6 기사년(1749) 측량한 10결 8속 가운데 을유년(1765) 측량으로 과거의 포락7 4결 49부 1속, 근래의 포락과 복사8 2결 64부 3속, 가경(加耕)9 포락 3부 7속과 가대 1결 80부 6속을 빼면 시기전은 1결 6부 8속이다.10,
汝于島 乙酉打量, 三結七十三負11二束12內, 覆沙一結六負除, 時起二結六十七負二束,
너섬13 을유년(1765) 측량한 3결 73부 2속 가운데 복사 1결 6부를 빼면, 시기전은 2결 67부 2속이다.14,
牛一隻, 船一隻.
소 한 짝, 배 한 척15.
내의원 약전(藥田)의 위치와 면적 등에 대해 설명한 조문이다. ↩︎
약전고개:중종 25년(1530)에 증보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의 한성부(漢城府) 내용 중에 약전고개가 나온다. 약전고개의 약전이 언제 생겼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의 서울 중구 중림동 일원이다. ↩︎
결:결부파속법에 따라 산출량에 의해 정해지는 면적 단위이다. 10파(把)=1속(束), 10속=1부(負), 100부=1결(結). 조선시대에는 양전(量田)을 시행해서 농지의 비옥도에 따라 여섯 개의 등급을 나누었는데, 가장 척박한 6등의 전(田)은 1등에 비해 네 배 정도 넓었다. ↩︎
시기전(時起田):논밭을 개간하여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 토지이다. ↩︎
189.7-65.2=124.5결 ↩︎
밤섬:《승정원일기》 인조 17년(1639) 1월 23일 기사를 통해 밤섬의 약전이 병자호란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과 마포구 당인동 사이의 한강에 있는 작은 섬이다. ↩︎
포락:강물이나 냇물에 의해 논밭이 개먹어서 두둑이 무너져 떨어짐을 뜻한다. ↩︎
복사:사태(沙汰)가 나서 모래가 뒤덮인 논밭을 뜻한다. ↩︎
가경(加耕):가경전. 새로 개간하여 아직 토지대장에 오르지 않은 밭을 뜻한다. ↩︎
1000.8 - 449.1 - 264.3 - 180.6 = 106.8결. 가경(加耕)은 아직 양안(量案)되지 않은 토지이므로 포락(浦落)되어도 계산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
負:’卜’으로 되어있지만 통용인 ‘負’로 수정했다. ↩︎
二束:원본에는 ‘2束’이 없으나 필사과정에서 오기된 것으로 보고 추가했다. ↩︎
너섬:《승정원일기》 숙종 34년(1708) 2월 25일 기사. ‘汝於島’로 나온다. 밤섬의 약전(藥田)에 포락(浦落)이 많은 까닭으로 인접해있던 너섬의 사축서(司畜署) 밭을 약전으로 사용할 수 있게 윤허 받았다. 현재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일대이다. 여의도(汝矣島)가 곧 ‘汝于島’인데 ‘于’가 ‘於’와 더불어 사용된 것으로 보아 발음은 ‘어’로 보아야 한다. ↩︎
373.2-106=267.2결 ↩︎
척:배를 셀 때에는 척으로 발음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