賻助 | 부조1
助哀所 舊有大同契, 賻助四喪, 中間物力不達, 仍爲廢閣. 乾隆戊子, 鄭尙書 亨復 提擧時, 慨然於此, 謀諸任官, 鳩聚財力, 別立一所, 名以助哀. 條成節目, 手製序文, 弁于卷首, 寔體古人歸厚無憾之意也.
조애소 옛날에 대동계(大同契)가 있어 4가지 상(喪)2을 부조했는데, 중간에 물력(物力)이 미치지 못하여 그대로 없어졌다. 건륭 무자년(1768), 상서(尙書) 정형복(鄭亨復)3이 제조로 있을 때 이를 애석하게 여겨서 모든 임관과 의논하여 재력을 끌어모아 별도로 1곳을 세우고 조애(助哀)라 이름 붙였다. 조목을 두어 절목을 완성하고 손수 서문을 써서 책머리에 갖추었으니, 실로 옛사람의 ‘두텁게 장사지내서 섭섭함이 없게 하라[歸厚無憾]’는 뜻을 체득한 것이다.
儲置齋需 諸般禮木, 斟酌增加, 添以官貯錢五十兩, 辦置齋需, 以備不虞, 以救四喪 廳官經再職納禮後施行. 父母己妻四望4喪, 及時任提調四望, 並致賻吊慰. 詳載《該廳節目》.
재수(齋需)5를 쌓아 두어 제반 예목(禮木)을 적절히 헤아려 증가시키고 관사에 비축한 돈 50냥을 더하여 재수를 마련해 두어 예기치 못한 일을 대비한다. 4가지 상(喪)을 구제한다 청관이면서 재차 직임을 거친 이가 납례(納禮)6 뒤에 시행한다. 부모, 자기, 처의 네 가지 상(喪)을 당한 경우 및 현직 제조의 네 가지 상도 모두 치부(致賻)하고, 조문하고 위로한다. 《권장청절목》에 자세히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