遷轉 | 천전1
醫學習讀官所業精通者, 啓授顯官 出《大典》. ○康熙庚午, 因醫官張有齡等上言, 吏曹覆啓, 醫員術業精通者, 除授東班正職, 一以依《大典》勸奬之條, 一以爲醫業興起之地, 似好得宜事, 蒙允. ○每都目, 從公議, 擇可合者, 備三望, 告提調, 後報吏曹. ○李相國 畬, 判吏部時, 雜技居官授正職者, 依參下陞六例, 經書中一書ㆍ本業中一書應講後, 擬望事, 啓稟定式. ○廳官卞三彬ㆍ玄萬初ㆍ李長白, 大政時, 以末副擬受點.
의학습독관으로 그 업에 정통한 이는 아뢰어 현관(顯官)2을 제수한다 출전 《경국대전》.3 ○강희 경오년(1690)에 의관 장유령(張有齡)4 등의 상언으로 인하여 이조에서 복계(覆啓)하기를 ‘의원으로 술업에 정통한 이에게 동반 정직5을 제수함으로써 한편으로는 《경국대전》 〈권장〉에 의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업을 흥기시킬 수 있는 바탕으로 삼는 것이 참으로 시의적절할 듯합니다.’라고 하여, 윤허를 얻었다. ○매 도목마다 공의(公議)를 따라 합당한 이를 택하여 삼망(三望, 세 후보자)을 갖추어 제조에게 고한 뒤에 이조에 보고한다. ○상국(相國) 이여(李畬)6가 이조판서로 있을 때 잡기로 벼슬하다가 정직을 제수 받는 경우 참하관이 승륙(陞六)7하는 예에 의거하여 경서 중에 1책, 본업 중에 1책을 응강한 뒤에 의망(擬望)하도록 하자고 계품하여 정식으로 삼았다. ○청관(廳官) 변삼빈(卞三彬)8, 현만초(玄萬初)9, 이장백(李長白)10은 대정(大政)11 때에 말망(末望), 부망(副望)으로 의망하여 낙점을 받았다.12
治腫敎授, 仕滿遷轉 詳見 〈官制〉.
치종교수는 임기가 만료되면 천전한다 〈관제〉에 자세히 보인다.
按, 《典錄通考13》云: 醫學習讀官所讀諸書日課, 本曹同提調考講, 能通者, 啓授顯職. 習讀官及敎授內生員進士, 以其仕日, 准圓點之數, 許赴文科館試. 成材人屬散者, 常仕本廳, 考褒貶, 東西班隨闕敍用. ○《受敎集錄》云: 三醫司己經六品職者, 東西班賞職, 除授時, 從初入仕例, 從品數.
살펴보건대, 《전록통고》에 ‘의학습독관이 읽는 책들은 일과(日課)를 기록하여 본조(本曹)에서 제조와 함께 고강하고 능통한 이를 아뢰어 현직(顯職)을 제수한다. 습독관 및 교수 안에서 생원과 진사라면 그 근무일을 원점(圓點)14 수에 준하도록 해 주어 문과와 관시(館試)15를 보는 것을 허락한다. 재주를 성취한 사람으로 산직(散職)에 속한 자는 본청에 늘 출근하다가 포폄을 살펴 동서반직에 빈자리가 생기는 대로 서용(敍用)한다.’16라고 하였다. ○《수교집록》에 ‘삼의사(三醫司)에서 6품직을 이미 거친 이가 동서반직을 상으로 제수받을 때에는, 초입사17의 예를 따르되, 품수(品數)18를 따른다.’19라고 하였다.
의학습독관과 치종교수 등이 벼슬자리를 옮기는 것에 대해 설명한 조문이다. ↩︎
현관(顯官):문무과 출신만이 할 수 있는 관직을 뜻한다. ↩︎
《경국대전》 〈예전ㆍ권장〉에 나온다. 본문에는 ‘의서습독관(醫書習讀官)으로 되어있다.’ ↩︎
장유령(張有齡):1651-?.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긍만(亘萬)으로 무과 세영(世英)의 아들이다. 1675년 식년시 의과에 급제하여 전의감정을 지낸 의관이다. 치손계 7세이다. 박훈평. op.cit. p.416. ↩︎
정직:사족 이상의 신분만이 임명되는 관직을 뜻한다. ↩︎
상국(相國) 이여(李畬):1645-1718.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삼(子三)으로 예빈시정 신하(紳夏)의 차남이다. 1680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숙종 조에 영의정이 되었다. 용재공파 17세이다. ↩︎
승륙(陞六):6품으로 오름을 뜻한다. 참하관에서 참상관이 되는 것은 조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었다. ↩︎
변삼빈(卞三彬):1667-1725.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문재(文哉)로 역과자헌 이숙(爾璹)의 독자이다. 1694년 내침의가 되어 와서별제, 조지서별제, 찰방 등을 지냈다. 경성파 19세이다. 박훈평. op.cit. p.214. ↩︎
현만초(玄萬初):?-?.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백순(伯淳)으로 통정(通政) 위(瑋)의 3남이다. 통훈대부, 혜민서주부를 지낸 의관이다. 박훈평. op.cit. p.581. ↩︎
이장백(李長白):1656-1715.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여구(汝久)이다. 혜민서교수 빈영(贇英)의 3남이다. 혜민서 의관으로 재직하다 1678년 증광시 의과에 급제하고, 1702년 내의원에 입속, 통정대부 내의원정을 지낸 의관이다. 빈영공파 8세이다. 박훈평. op.cit. p.357. ↩︎
대정(大政):음력 12월의 도목정사이다. 도목정사는 해마다 음력 6월과 12월에 행해졌는데 음력 12월의 도목정사가 더 커서 대정이라 불렀다. ↩︎
세 후보자(三望) 중 2번째 후보자를 부망(副望), 3번째 후보자를 말망(末望)이라 한다. ↩︎
《전록통고》를 참고하여 ‘錄’자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
원점(圓點):출결을 위해 식당에 들어갈 때 찍는 점이다. 아침과 저녁을 한 점으로 했다. ↩︎
관시(館試):성균관 유생들만이 볼 수 있는 초시를 뜻한다. ↩︎
《전록통고》 〈예전ㆍ권장〉에 나온다. ↩︎
초입사:처음 조정에 들어와서 벼슬하는 것, 또는 처음 조정에 들어와서 맡는 관직ㆍ자리 및 처음 조정에 들어와서 벼슬하는 사람을 말한다. ↩︎
품수(品數):벼슬 등급의 차례를 뜻한다. ↩︎
《수교집록》 〈이전ㆍ관직〉 숙종 12년(1686)의 강희병인승전(康熙丙寅承傳)에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