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의료 법령과 규정

박훈평

1. 머리말

한국의학사는 미키 사카에에 의해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 이래, 1980년대만 하더라도 김두종ㆍ손홍렬 등 소수의 연구자만 관심을 가지는 분야였다. 1990년대 들어 의학사 관련 학회들의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의학사 연구는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으며,1 2010년 들어 통신사를 비롯한 연구 분야의 확장과 미시사적인 접근 등 연구 방법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2

의학사의 전통적인 연구 주제는 먼저 의서(醫書)와 그 속에 담긴 저자의 의학 치료술 및 사상에 대한 것이고, 둘째로 의료 환경 연구 즉 의료제도와 의료인에 대한 것이다.3 그런데 근래의 의료 제도사 연구는 1980년대 이전 시기에 비교하여4 활발하지 않은 상황이다. 의학 통사(通史)에서 일부 다루어지거나 선행 연구의 오류를 일부 수정하는 정도의 소논문 작업이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5 필자는 평소 의료 제도사와 관련된 소논문을 써오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이 글은 이번에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한국의학사료총서’ 중 하나로 조선의 의료 법령과 규정이 담긴 책을 발간하면서, 수록 자료의 개괄과 해제를 목적으로 쓰였다.

이 책에서는 의료 제도사와 관련된 내용을 크게 법령 자료와 의료관청 자료로 구분하여 수록하였다.

법령 자료는 국전(國典), 수교(受敎), 조례ㆍ사례ㆍ관서지, 형률서 및 판례집, 전례서(典禮書), 사찬(私撰) 법전, 기타의 7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본서에서는 분량이 워낙 방대하여 의료 관련 내용만 발췌하여 번역하였다. 국전과 수교는 국가의 최상위법이라고 할 수 있다. 조례ㆍ사례ㆍ관서지에서는 의약관청 이외의 관청 자료 중에서 의약 관련 규정들을 발췌했고, 형률서 및 판례집에서는 법의학 등 의약 관련 내용 등을 뽑았다. 전례서와 사찬 법전 등에는 의약 관련 법령을 이해할 때 도움이 되는 기록이 담겨 있다. 이러한 자료는 여러 문헌에 흩어져 있어서 연구 과정에서 불편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 이 책의 간행으로 이러한 불편함을 상당 부분 해소하리라 기대한다.

의료관청 자료는 의료관청이나 의관(醫官)이 작성한 자료이며, 그중에 현존하는 주요 자료 7종을 골라 원문과 번역문을 실었다. 의료관청 자료는 자료의 성격에 따라 2가지로 구분하였다. 하나는 의료관청 자체의 기록으로, ‘삼의사(三醫司, 내의원ㆍ전의감ㆍ혜민서)’라는 제목으로 묶을 수 있다. 《내의원정례》, 《혜국지》, 《내의원식례》의 3종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하나는 의료관청은 아니지만 파견되었던 의관에 대한 기록으로, ‘외임(外任, 지방 관원) 및 분차(分差, 파견)’라는 제목으로 묶을 수 있다. 《의정부약방식례》, 《약방등록》, 《심약사례》, 《산실청총규》의 4종이 이에 해당한다.

2. 법령 자료

2.1 국전(國典)

1392년 조선 개국 당시 조선에는 독자적인 법전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가장 최신의 중국 법전인 《대명률大明律》(1389년)을 조선의 법전으로 삼은 후 그에 대한 번역 작업이 뒤따랐으니 1395년(태조 4)의 《대명률직해》가 최초였다. 그 이후에 간행된 《대명률강해》나 《대명률부례》도 《대명률》에 대한 주해서이다.6 조선의 독자적인 법전은 성종 조 《경국대전(을사대전)》(1485년)의 간행으로 완성되었다. 《을사대전乙巳大典》 이전에도 정도전의 《조선경국전》(1394년) 등 여러 법전이 만들어졌으나, 그 내용은 완성된 법전인 《을사대전》으로 흡수되었고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경국전》만 저자 정도전(鄭道傳)의 문집 《삼봉집》에 내용 일부가 전한다. 중종 조에는 《을사대전》의 해설서인 《경국대전주해》가 만들어졌다. 《경국대전》 이후 국전(國典)을 수정ㆍ증보하는 작업은 영조 조의 《속대전》, 정조 조의 《대전통편》, 고종 조의 《대전회통》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법전에 수록된 의약 관련 기록은 의료관청 제도와 소속 관원, 의과와 의학 취재 등 조선시대 의료제도를 이해하는 데 필수자료이다. 《경국대전》 및 《속대전》 등 조선의 국전은 초기 의학사 연구자들에 의해 일찍이 주목받았다. 그러나 《경국대전주해》와 《대명률》 및 주해서들은 조선 전기 의료 법령의 기본적인 법전임에도 불구하고 의학사 연구자들에 의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본서에 수록된 법전류는 10종으로 다음과 같다(표 1).

표 1. 법전 서지 사항

 책 제목권책간행 시기저자ㆍ편자소장 기관
1朝鮮經國典2권1394년정도전(삼봉집) 규장각 등
2大明律直解30권 4책1395년김지, 고사경고려대학교 등
3大明律講解30권 4책세종 연간미상국립중앙도서관 등
4經國大典(乙巳大典)6권 3책1485년최항 등규장각 등
5經國大典註解(前集)1권 1책1555년안위, 민전규장각
6經國大典註解(後集)2권 1책1555년안위미상
7大明律附例30권 6책1585년미상규장각 등
8續大典6권 4책1746년서종옥 등규장각 등
9大典通編6권 5책1785년김치인 등규장각 등
10大典會通6권 5책1865년조두순 등규장각 등

《경국대전(을사대전)》은 주례(周禮)의 육전(六典) 체제를 따랐으며 이전ㆍ호전ㆍ예전ㆍ병전ㆍ형전ㆍ공전으로 구성되었다. 육전에 수록된 규정은 다음과 같다. 이전(吏典)은 중앙과 지방의 관제, 관원의 품계ㆍ소속ㆍ임면 등을 수록하였고, 호전(戶典)은 재정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수록하였다. 예전(禮典)은 교육과 과거, 국가 의례, 외교 등을 수록하였고, 병전(兵典)은 군사와 관계된 군제, 군역 등을 수록하였다. 형전(刑典)은 형률ㆍ노비ㆍ상속 등을 수록하였고, 공전(工典)은 건설ㆍ유지ㆍ관리 등을 수록하였다.7 이러한 《경국대전》의 육전 체제 형식은 조선의 마지막 국전인 《대전회통》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조선 전기의 국법(國法) 체계는 《경국대전》을 중심축으로 하되, 전례(典禮)는 《국조오례의》를 준용하고, 형률은 《대명률》로 보완하는 형식이었다. 영조 조 《속대전》의 편찬은 새로운 축을 형성하는 일로 평가받는다. 국전은 《속대전》으로 전례는 《속오례의》로 각각 계승되었으나, 형률은 독립적인 서적이 아니라 《속대전》의 형전(刑典)으로 편입되는 양상을 보인다.8 정조 조의 《대전통편》은 이전의 국전과는 다르게 기존의 법령을 통합한 것이 아니라, 당시 국왕인 정조의 수교(受敎)를 담아낸 결과물이었다. 새롭게 실린 내용은 ‘增’이라고 표기되었으며, 정조의 수교가 새로 반영된 부분[大字]과 이전의 법령을 일부 조정한 부분[細註]으로 나누어진다. 즉 《대전통편》은 ‘기존 국전에서 윤곽이 잡힌 체제를 산삭하여 조율하는 역할’이라 평가할 수 있다.9 고종 조의 《대전회통》 또한 성격이 《대전통편》과 유사하다. 이전 국전의 규정을 ‘原(경국대전)’, ‘續(속대전)’, ‘增(대전통편)’으로 표기하고, 새로 추가한 내용을 ‘補’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증보된 내용은 《속대전》과 《대전통편》에 비하여 별로 없다. 그러나 종친부(宗親府)의 권한을 강화하고 의정부의 기능을 복구ㆍ확대하는 등 왕권 강화와 관련된 규정의 정비가 이루어졌다.10

2.2 수교(受敎)

수교란 ‘국왕이 어떤 현안에 대하여 신료 개인이나 각 관서에서 상소 등으로 발의하면, 이를 고위 신료들이 논의를 거쳐 정리하고, 그 결과를 교지(敎旨) 등으로 해당 관서에 내릴 때, 왕명을 받아 시행하는 관서에서 그 왕명을 부르는 용어’이다.11 즉 수교는 《경국대전》과 같은 법전에 규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하여 보완적인 성격을 지닌 문건이다. 이들 문헌은 다른 사료를 통해 알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개별 수교들은 수교집(受敎集)의 형태로 집적되어 간행되었고, 그 내용은 관서별로 정리되었다. 본서에 수록된 수교는 10종으로 다음과 같다(표 2).

표 2. 수교 서지 사항

 책 제목권책간행 시기소장 기관
1大典續錄6권 1책1492년규장각 등
2大典後續錄6권 1책1543년규장각 등
3各司受敎1책1546-1576년규장각 등
4受敎輯錄2권 2책1698년규장각 등
5典錄通考14권 7책1707년규장각 등
6新補受敎輯錄2권 2책1743년규장각
7增補典錄通考6권 6책영조 연간규장각 등
8特敎定式1책1794년규장각
9受敎謄錄2책1802-1885년규장각 등
10受敎定例1책순조 연간규장각 등

2.3 조례ㆍ사례ㆍ관서지

조례(條例)란 상위 법령인 법전과 수교를 근거로 각 관청에서 실무 처리를 위하여 만들어진 업무 규정들을 말하며, 사례(事例)는 각 관청의 업무 규정 및 재정(財政) 등을 담은 문헌이다. 일반적으로 사례가 조례보다 다루는 영역이 더 넓다. 관서지(官署誌)는 해당 관청의 연혁ㆍ관원 등에 대하여 상세하게 수록한 문헌이다. 의약관청의 조례ㆍ사례ㆍ관서지는 3부(의료관청 자료)에 따로 모으고, 2부(법령 자료)에서는 의료관청 이외의 자료 중에서 의약 관련 내용을 발췌하였다. 본서에 수록된 조례ㆍ사례ㆍ관서지는 12종으로 다음과 같다(표 3). 이러한 문헌들은 주로 숙종 이후에 해당 관청에서 만들어졌다.

표 3. 조례ㆍ사례ㆍ관서지 서지 사항

 책 제목관련 관청간행 시기
1通文館志사역원1720년
2春官志(2종)예조1744, 81년
3貢弊비변사1753년
4市弊비변사1753년
5秋官志형조1781, 91년
6春官通考예조1788년
7政院故事승정원정조 연간
8宣惠廳事例선혜청1800년
9萬機要覽(2종)호조, 병조1808, 1838년
10書雲觀志관상감1818년
11度支五禮考호조1840-41년
12六典條例육조1867년

2.4 형률서 및 판례집

형률(刑律)이란 형법에 관련된 법령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의약 관련 기록은 법의학 관련 규정이 주 내용이다. 본서에서는 당나라 고종의 명으로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이 쓴 《당률소의唐律疏議》, 1905년에 초간되고 1906년과 1908년에 개정된 《형법대전刑法大全》을 수록하였다.

2.5 전례서

전례서(典禮書)는 오례(五禮), 즉 가례(嘉禮)ㆍ길례(吉禮)ㆍ흉례(凶禮)ㆍ군례(軍禮)ㆍ빈례(賓禮)에 대한 규정이나 사례를 담은 책으로, 유교적 통치이념을 내세운 조선에 있어서는 중시되었던 영역이다. 본서에 수록된 전례서는 7종으로 다음과 같다(표 4).

표 4. 전례서

 책 제목권책간행 시기저자소장 기관
1國朝五禮序例5권 2책1474년신숙주, 강희맹규장각 등
2國朝五禮儀8권 6책1475년신숙주, 정척규장각 등
3國朝續五禮儀5권 4책1744년이종성규장각 등
4國朝續五禮儀補2권 1책1751년신만규장각 등
5國朝喪禮補編6권 6책1758년홍계희규장각 등
6國朝五禮通編1책, 3책1810년이지영규장각 등
7大韓禮典10권 10책1898년대한제국 사례소장서각

2.6 사찬법전

구윤명(具允明)이 1761년에 처음 편찬하고 1787년에 증보한 사찬(私撰) 법전 《전율통보典律通補》는 《경국대전》 등 당시에 존재하는 법전을 하나로 종합한 책이다. 정조 시기의 현행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법전이다.

2.7 기타

이병하(李炳夏)가 저술한 《해혹변의解惑辨疑》는 의과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어휘집 자료이나, 저자가 전의감 관원을 지내면서 전의감 관원의 직제와 급료에 대해 기록한 내용이 있으므로 해당 내용을 발췌하여 수록하였다.12

3. 의료관청 자료

3.1 개괄

조선의 의료관청은 세종 대에 완성된 내의원ㆍ전의감ㆍ혜민서의 삼의사(三醫司) 체제가 갑오개혁 직전까지 지속된다. 삼의사 이외에도 제생원ㆍ활인서 등 의약과 관련된 관청들이 존재했으며, 의료관청이 아닌 곳에서 약방(藥房) 등 다수의 외임직 의학 관원들이 종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관청에서 만들어진 문헌들은 상당수가 현존하지 않는다. 대개 필사본으로 유일본이었기 때문이다. 본서에 수록된 의료관청 자료도 7종뿐이다. 그러나 이들 문헌은 현존 자료 중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의 의료관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참조해야 하는 1차 사료들이다. 본서에 수록된 의료관청 자료의 서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표 5).

표 5. 의학관청 자료의 서지 사항13

 책 제목판사항저술 시기저자ㆍ편자소장 기관분량
1內醫院定例동활자본 (무신자)1751년朴文秀 등규장각 등35장
2惠局志필사본1719년(편찬)姜渭聘규장각31장
   1778년(중수)卞泰恒  
3內醫院式例필사본1810년경내의원규장각15장
4議政府藥房式例필사본1812년의정부규장각21장
5藥房謄錄필사본1820년 이후종친부규장각8장
6審藥事例필사본1873년전의감국립중앙도서관76장
7産室廳總規필사본1875년미상일본 杏雨書屋 

3.2 자료별 해제

3.2.1 삼의사(三醫司) 문헌

① 내의원정례(內醫院定例)

《내의원정례》는 23책으로 구성된 《탁지정례度支定例》의 제6책에 실린 내의원에 관한 정례로서 여러 관청의 정례를 모은 《각사정례各司定例》의 일부분이다. 영조의 명으로 박문수 등이 편찬하였다. 《탁지정례》 중 《공상정례》와 《국혼정례》만 1749년에 간행되었고, 《각사정례》의 다른 책들은 1750년에 초고가 완성되었고, 이후 수정을 거쳐 1751년까지 순차적으로 간행되었다.14 ‘內醫院定例’란 책 이름은 필자가 편의상 다른 문헌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붙였다.

본문은 63개 조로 ‘每朔恒式, 逐日進排, 每三日進排, 日記粧所入, 進御藥置簿冊所用, 各道藥貢案冊一件所入, 凡擧動時, 看病時, 赴燕看病時, 牛黃淸心元所入, 安神丸所入, 牛黃膏所入, 八味元所入, 九味淸心元所入, 瓊玉膏所入, 酥油劑造所入, 薏苡搗末所入, 太乙膏萬病無優膏雲母膏所入, 進上芙蓉香所入’ 등이다. 《내의원정례》는 별도로 간행된 적이 없어서 그동안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책의 존재조차 의학사 연구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 내용이 수록된 《탁지정례》조차 역사학계 내에서 일부 경제사학자들이나 활용하는 문헌이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내의원에서 사용되던 물품 내역을 상세하게 담고 있어서 당시 내의원 연구에 있어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 또한 《내의원식례》의 내용을 이해하기에 비교 자료로서도 유용하다.

사진 1. 《탁지정례》 6책 표지 및 내의원 본문 첫 면 (규장각 소장)

② 혜국지(惠局志)

《혜국지》는 혜민서의 관청지로서 혜민서 구임이었던 강위빙(姜渭聘)이 1711년 처음 저술하였고, 1747년에 혜민서 교수였던 변석화(卞碩和)에 의해 증보가 이루어지기 시작해, 그의 아들인 혜민서 구임 변태항(卞泰恒)과 그 동료 2-3명에 의해 1778년(정조 2) 8월에 완결되었다. 현전본은 1874년(고종 10)에 강위빙의 6대손인 전의감 직장 강해수(姜海秀)가 필사한 책이다. 《혜국지》의 내용은 크게 서문, 목록, 본문으로 나뉜다. 서문은 저자인 강위빙, 필사자인 강해수, 중수(重修)한 변태항의 순으로 3편이 실려 있다.

본문은 ‘惠局志’로 시작하고 말미에 ‘惠局志 終’으로 끝맺는다. 본문 내용은 연혁(沿革), 솔속(率屬), 고과(考課), 식례(式例), 지공(支供)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시 29조로 세분하여 각 항목에 대한 내용을 기술하였다. 본문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연혁 5조:官制, 衛職, 外任, 原籍, 官舍
  2. 솔속 3조:員役, 醫女, 奴婢
  3. 고과 8조:入屬, 褒貶, 祿試, 聰敏, 勸奬, 生徒考講, 醫女考講, 遷轉
  4. 식례 8조:入直, 分差, 供仕, 擬望, 賻助, 該用文狀‚ 書籍, 什物
  5. 지공 5조:藥田, 貢物, 進排, 應役, 經費

《혜국지》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18세기 혜민서의 실제 운영과 규정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1차 자료이다. 주부(主簿), 직장(直長) 등 녹관(祿官)의 담당업무, 혜민서 관아 건물들, 포폄(褒貶) 과정, 취재(取才) 과정, 약전(藥田)의 운영 등에 대한 내용은 이 책에서만 상세히 볼 수 있다.

둘째, 《혜국지》와 조선시대 다른 법전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혜민서뿐 아니라 전의감 관련 제도의 변천 추이를 살펴보는 데 유익하다. 1746년 간행된 《속대전》과 1785년 간행된 《대전통편》의 편찬 시기는 《혜국지》의 저술연대와 동시대이므로 두 법전에 수록된 혜민서 규정을 더욱 소상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혜민서는 전의감과 공통되는 업무가 많아서, 당시 전의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셋째, 18세기 조선에서 이루어지던 의료 제도 변화의 과도기적인 여러 면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조선 중기까지 교과서로 사용되지 않던 《의학입문》이 점차 널리 활용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778년에 《혜국지》가 저술된 당시만 해도 혜민서 서고(書庫)에는 《의학입문》이 없었고, 취재와 생도의 고강(考講)에서도 활용되지 못했으며, 단지 권장청(勸獎廳)에서만 쓰였다. 이후 순조 때에 이르러 전라감영 등에서 간행되었고, 1834년에는 의과 초시에 정식 과목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편 당약(唐藥)을 맡은 참봉직(參奉職)이 산료(散料, 월급)를 받는 자리로 변화되는 점은 혜민서에서 취급하는 약재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 밖에도 혜민서 교수의 문관 겸직 폐지를 통해 의관 종사자의 의서 해독에 대한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정황도 살필 수 있다.

넷째, 《혜국지》는 서지학 연구에 활용될 만한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서적書籍〉조의 혜민서 소장 서책과, 본문에서 출전으로 기록된 문헌들은 향후 양의사(兩醫司) 간행 문헌이 발굴될 때 서지학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집물什物〉조의 《동인경》과 《찬도맥》의 책판(冊版) 관련 내용은 《누판고》의 기록을 보완할 수 있는 면이 있다. 특히 《찬도맥》은 훈련도감본의 복각본일 가능성이 있어 현존하는 《찬도맥》 목판본들과 비교 연구가 필요하다.15

사진 2. 《혜국지》 표지 및 서문 (규장각 소장)

③ 내의원식례(內醫院式例)

《내의원식례》는 별도의 서문이나 발문 없이 목록과 본문만으로 이루어진 문헌이다. 본문은 순서대로 ‘官舍, 官制, 啓辭問安, 口傳問安, 分提調問安, 醫官單子問 安, 醫女問安, 入侍, 設廳, 年例進上, 年例卜定, 年例劑造, 京外貢藥材, 應下, 藥劣, 監劑, 玉樞丹祭, 入番, 擧動進參, 坐起, 奉使, 給馬, 供饋, 入啓文書, 文簿, 率屬, 料布, 什物, 藥田, 雜例’의 30조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 조문의 분량은 일정하지 않고 차이가 크다. 내용으로 구분하여 임의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연혁 2조문:관사, 관제
    • 문안과 입시 7조문:계사문안, 구전문안, 분제조문안, 의관단자문안,
    • 의녀문안, 입시, 설청
  2. 약재 지공 6조문:연례진상, 연례복정, 연례제조, 경외공약재, 응하, 약열
    • 식례 9조문:감제, 옥추단제, 입번, 거동진참, 좌기, 봉사, 급마,
    • 입계문서, 문부
  3. 약재 외의 지공 3조문:공궤, 솔속, 요포
  4. 기타 3조문:집물, 약전, 잡례

소장처인 규장각에서는 ‘내의원식례(內醫院式例)’라고 명칭으로 부르고 있으나 표제ㆍ목록ㆍ본문에서는 단지 ‘내의원(內醫院)’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할 뿐이고, ‘식례(式例, 기존 전례)’란 제목으로 묶일 수 없는 내용도 적지 않아서 그 명칭에 필자는 이의를 제기한다. 이 문헌의 전체 내용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관청지를 지칭하는 ‘내의원지(內醫院志)’ 또는 ‘내국지(內局志)’라는 명칭이 더 적절해 보인다. 《내의원식례》는 그 내용으로 볼 때 1807년 4월 이후 1814년 이전에 완성되었으니, 문헌의 저술시기는 대략 순조 10년(1810) 전후로 추정된다.

《내의원식례》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19세기 초반 내의원의 실제 운영과 규정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는 1차 자료이다. 내의원 관아 건물들과 직방의 위치, 입진(入診)과 지탕제(持湯劑)의 절차, 약전의 규모 등은 본 문헌을 통해서만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둘째 조선시대에 사용된 의약 관련 용어와 단어의 개념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약열(藥劣)의 개념과 지탕제(持湯劑)의 뜻 등은 이 문헌을 통해서 알 수 있다.16

사진 3. 《내의원식례》 표지와 목록 (규장각 소장)

3.2.2. 외임(外任) 및 분차(分差) 문헌

① 의정부약방식례(議政府藥房式例)

《의정부약방식례》는 의정부에 소속된 의관인 약방(종8품)과 관련된 문헌이다. 본 문헌에는 별도의 서・발문이나 목록은 없고, 본문은 각각 다른 시기에 작성된 3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절목節目〉은 첫 부분으로 1812년에 작성되었으며, 전체 원문의 22장 중 17장 분량을 차지한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은 먼저 전문(前文)과 14조로 된 〈절목〉, 6항목으로 된 〈약채봉상藥債捧上〉, 〈약방연례봉상상하도수藥房年例捧上上下都數〉의 3부분으로 나뉜다. 다음의 〈신절목新節目〉은 둘째 부분으로 1장 분량이며 1832년에 작성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내용은 전문과 4항목으로 된 〈불우비조응봉상질不虞備條應捧上秩〉이다. 마지막 〈신정식新定式〉은 셋째 부분으로 4장 분량이며 1840년에 작성되었다. 여기에는 전문과 5항목이 실려 있다.

《의정부약방식례》는 19세기 의정부 약방의 실제 업무가 기록된 희귀한 자료이다. 약방은 의약 관련된 업무 외에 소속 관청의 행정 업무도 수행하였다. 예를 들어, 의정부 약방은 외임관이 의정부에 바치는 물품의 관리를 하였고, 의정부 소속 관원들에게 숯과 땔감을 공급하는 역할도 하였다.17

② 약방등록(藥房謄錄)

《약방등록》은 종친부에서 유사당상(有司堂上), 공주(公主) 등에게 인삼ㆍ전약(煎藥)ㆍ납약(臘藥)을 나누어주는 내역을 종친부 약방(종8품 1원, 종9품 1원)이 작성한 8장 분량의 문헌이다. 이 문헌의 경우 저술 시기를 특정할 만한 기록은 없다. 다만 내용상의 단서로 유추해보면 1820년(순조 20)에서 1864년(고종 원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의정부약방식례》처럼 분차(分差, 파견) 약방이 해당 관청에서 수행하던 실제 업무 사례를 살필 수 있다.

③ 심약사례(審藥事例)

《심약사례》는 경상감영 심약(審藥)을 비롯한 25종의 각 도 심약과 약방(藥房)에 대한 사례집이다. 책의 최종 완성 연도는 1873년 12월 24일 이후지만, 본문 중간에 19세기에 작성된 내용들이 혼재되어 있다. 책의 작성 주체는 전의감 소속 관원으로 추정된다. 심약을 분차(分差, 파견)하는 기관은 전의감과 혜민서이나, 내용 중에 전의감 위주로 기록된 표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별도의 서문이나 발문이 없고, 서문 역할을 하는 완의(完議)와 각 심약에 따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본문은 경상감영의 내용이 특히 상세하여 전체의 1/3 분량을 차지하며, 경상감영ㆍ충청감영ㆍ전라감영ㆍ황해감영의 조목에만 다시 세목이 존재한다.

이 책을 통하여 심약은 중앙 의료에 필요한 물품 조달이 주목적이고, 부수적으로 중앙에서 지방으로 파견된 고위직 관료(감사 등)의 치료 및 군의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내용의 상당 부분은 약재와 물품을 진상하는 규례와 이것을 지급하는 규례이다. 만약 심약의 임무 가운데 의생 교육 등이 중요했다면 이와 관련된 규례 등이 존재했을 것이다.

사진 4. 《심약사례》 표지와 완의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④ 산실청총규(産室廳總規)

《산실청총규》는 조선시대 산실청에 대한 일종의 업무 규정집이다. 산실청이란 빈궁(嬪宮, 중전과 세자빈)이 분만할 때, 산달 3달 전에 설치하는 임시 기구였다. 이 책은 순종의 탄생 이후(1874년 2월 14일) 처음 저술되었고, 1875년 4월 11일 이후에 일부 바뀐 사례를 토대로 추가 수정이 이루어졌다. 서문ㆍ목차ㆍ발문이 없으며, 내용상에도 조목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다만 2장 분량의 산실청범례와 28장 분량의 산실청총규는 제목을 두어 구분하였다.

고종 초기에 법전을 개정하면서 여러 제도를 보완ㆍ정비하였고, 각 관청에서도 기존 규정집을 개정하게 되었다. 정조 때 간행되었던 《대전통편》이 1865년 12월 《대전회통》으로 개정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조와 병조의 규정집인 《양전편고兩典便考》가 간행되었으며, 1866년 12월에는 육조 관련 법전인 《육전조례六典條例》가 완성되었다. 승정원의 《은대조례銀臺條例》(1870년)와 종친부의 《종친부조례宗親府條例》(1870년) 등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대원군의 집권기(1864-1873년)와 거의 일치한다. 장유승은 고종 조 법전 개정과 각 관청 규정집의 간행이 대원군의 집권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대원군은 이들 문헌을 통해 종친부의 위상 강화와 관련된 규정을 보완하였고, 자신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 평가했다.18

《산실청총규》는 1874년 시작하여 1875년에 정리를 마쳤으므로 다른 규정집들의 편찬 시기보다 조금 늦으며, 대원군 집권기가 끝난 이후이다. 《산실청총규》에 운현궁이 한 차례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는 약물 수급에 관한 보충 기록이다. 또한 종실 중에 임명할 수 있었던 권초관(捲草官)을 정관(政官, 이조와 병조의 당상관)으로 한정함으로써, 대원군 집권 이전 시기의 규정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19

사진 5. 《산실청총규》 표지와 범례 (일본 杏雨書屋 소장)

4. 맺음말

지금까지 이 책에 수록된 법령 자료와 의료관청 자료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특히 의료관청 자료는 의료 제도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책의 서지ㆍ내용ㆍ의의에 대하여 보다 상세히 수록하고자 하였다. 현재 알려진 의료 제도사 관련 주요 자료들을 하나의 책에 모아 놓았으니 향후 의학사 연구자들에게 1차 사료로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 자료만으로 조선시대 의료 제도를 재구성하기에는 아직 성긴 체처럼 여백이 많다. 더 많은 양질의 자료가 발굴되어 그 구멍을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 《內醫院式例》
  • 《度支定例(內醫院定例)》
  • 《産室廳總規》
  • 《審藥事例》
  • 《藥房謄錄》
  • 《議政府藥房式例》
  • 《惠局志》
  • 구자훈 역. 『국역 산실청총규』. 대전:한국한의학연구원. 2016.
  • 김두종. 『한국의학사』. 서울:탐구당. 1981.
  • 손홍렬. 『한국 중세의 의료제도 연구』. 서울:수서원. 1988.
  • 이강욱 역. 『국역 은대조례』. 서울:한국고전번역원. 2012.
  • 이경록. 『조선전기의 의료제도와 의술』. 서울:역사공간. 2020.
  •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 법전연구반 역주. 『역주 각사수교』. 서울:청년사. 2002.
  • 三木榮. 『朝鮮醫學史及疾病史』. 京都:思文閣. 1991.
  • 김덕진. 영조대 정례서 편찬의 재정사적 의의. 장서각 27집. 2012.
  • 김백철. 조선후기 영조대 법전 정비와 속대전의 편찬. 역사와 현실 68권. 2008.
  • 김백철. 조선후기 정조대 법제 정비와 대전통편 체제의 구현. 대동문화연구 64권. 2008.
  • 김성수. 한국 전근대의료사의 연구동향과 전망(2010-2019). 의사학 29-2호. 2020.
  • 문소라. 조선시대 간행의 대명률 주석서 판본 분석. 경북대학교대학원 석사논문. 2013.
  • 박훈평, 안상우. 혜민서 관청지 혜국지 편제와 내용 연구. 한국의사학회지 27-1호. 2014.
  • 박훈평. 내의원 편 내의원식례의 저술 시기와 내용 연구. 한국의사학회지 28-1호. 2015.
  • 박훈평. 심약사례 연구. 한국의사학회지 32-2호. 2019.
  • 박훈평. 의정부약방식례 연구. 한국의사학회지 33-1호. 2020.
  • 박훈평. 李炳夏의 『解惑辨疑』 연구.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34-1호. 2021.
  • 신동원. 한국 전근대 의학사 연구 동향. 의사학 19-1호. 2010.
  • 정성식. 경국대전의 성립 배경과 체제. 동양문화연구 13호. 2013.
  • 정호훈. 대원군 집정기 대전회통의 편찬. 조선시대사학보 35호. 2005.

  1. 신동원의 논문 「한국 전근대 의학사 연구 동향」 1-43쪽을 참조하였다. ↩︎

  2. 김성수의 논문 「한국 전근대의료사의 연구동향과 전망(2010-2019)」 383-389쪽을 참조하였다. ↩︎

  3. 김성수의 앞 논문 379-380쪽을 참조하였다. ↩︎

  4. 초기 제도사 관련 연구서는 三木榮의 『朝鮮醫學史及疾病史』, 김두종의 『한국의학사』, 손홍렬의 『한국 중세의 의료제도 연구』가 대표적이다. 특히 손의 연구서는 제도사만을 전문적으로 다루었다. 1990년대 이후의 제도사 연구는 이들 3인의 연구성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

  5. 통사가 아닌 최근의 연구서로 이경록의 『조선전기의 의료제도와 의술』이 있다. 이는 의서습독관 제도와 조선 전기 의료기구 등에 대한 논문을 모아 펴낸 것이다. ↩︎

  6. 《대명률》 주해서의 서지 사항은 문소라의 논문 「조선시대 간행의 대명률 주석서 판본 분석」 9-15, 22, 46, 71쪽을 참조하였다. ↩︎

  7. 《경국대전》 체제는 정성식의 논문 「경국대전의 성립 배경과 체제」 57-58쪽을 요약하였다. ↩︎

  8. 《속대전》의 의의는 김백철의 논문 「조선후기 영조대 법전 정비와 속대전의 편찬」 207-209쪽을 인용하였다. ↩︎

  9. 《대전통편》의 의의는 김백철의 논문 「조선후기 정조대 법제 정비와 대전통편 체제의 구현」 344-348쪽을 인용하였다. ↩︎

  10. 정호훈의 논문 「대원군 집정기 대전회통의 편찬」 14-17쪽을 참조하였다. ↩︎

  11.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 법전연구반의 번역서 『역주 각사수교』 8쪽을 참조하였다. ↩︎

  12. 박훈평의 논문 「李炳夏의 『解惑辨疑』 연구」 1-25쪽을 참조하였다. ↩︎

  13. 《혜국지》는 소장처의 해제에서 분량이 30장이라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31장이다. ↩︎

  14. 김덕진의 논문 「영조 대 정례서 편찬의 재정사적 의의」 23-24쪽을 참조하였다. 《내의원정례》는 《각사정례》에 포함된다. ↩︎

  15. 《혜국지》의 해제는 박훈평ㆍ안상우의 논문 「혜민서 관청지 혜국지 편제와 내용 연구」 119-133쪽을 요약하였다. ↩︎

  16. 《내의원식례》 해제는 박훈평의 논문 「내의원 편 내의원 식례의 저술 시기와 내용 연구」 39-51쪽을 요약하였다. ↩︎

  17. 《의정부약방식례》 해제는 박훈평의 논문 「의정부약방식례 연구」 21-30쪽을 요약하였다. ↩︎

  18. 이강욱의 번역서 『국역 은대조례』 17-18쪽 장유승의 해제를 참조하였다. ↩︎

  19. 《산실청총규》 해제는 구자훈의 번역서 『국역 산실청총규』 130-137쪽에 실린 필자의 해제를 요약하였다. ↩︎